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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계사 Sam 일상/꾸준하게

꾸준히 실행하는 독서 Day 73. 스트리밍 라이프 - 흐르는 강물처럼(ft. 새벽 기상 & 새벽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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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중에서 

새벽 4시 30분... 일어나 옷을 갈아 입고 새로 산 후리스 자켓을 걸쳤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새벽에 가볍게 입을 따듯한 자켓이 사고 싶어 져서 후리스 자켓을 하나 구매했다. 어제 택배 상자에 담겨 있던 옷을 꺼내 옷걸이에 걸면서 이미 걸려 있는 옷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나는 입어주지 않느냐고... 가을을 맞이하면서 옷 정리를 했는데도 여전히 많은 옷들이 걸려 있다. 여전히 쓸데없는 것을 많이 갖고 있는 걸까... 아직도 언젠가 입을지도 몰라 생각하면서 갖고 있는 옷들이 있는 걸까...  

 

새벽에 옷걸이에서 후리스 자켓을 꺼내 입으면서 다시 옆에 걸린 옷들이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새 옷을 입는다는 즐거움은 전혀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새로 산 옷이 따듯하고 가볍다. 기분이 좋아진다. 산책하는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잘 샀네...

 

지난 과거에 필요해서, 때로는 순간의 만족을 위해 충동적으로 구매했던 물건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 그럼에도 언젠가는 사용하겠지 하면서 버리지 못했다. 그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과감히 버리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내 삶에 오래 존재한다고 느껴지는 물건들을 정리해오고 있다. 한정적인 나의 공간과 내 삶에 모든 것을 간직하고 살아갈 순 없기에, 새로운 물건들에게 내어 줄 공간을 만들기 위해 버리고 정리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문득 생각했다. 버리는 것은 버리는 행위 자체보다 버림으로써 만들어진 공간에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새로운 옷을 입으니 기분이 좋다. 있는 옷에 옷을 더한 것이 아니라 버린 옷 덕분에 느낄 수 있는 가벼움과 따듯함이었다. 소유했다는 기쁨이 아니라 내 삶에 잠시 머물다 갈 옷이기에 그저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즐거움을 느낀다. 중랑천의 물줄기가 그저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나에게 오는 것들, 나로부터 떠나가는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오는 대로 가는 대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 스트리밍 라이프...

 

나는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사들인, '너무 오래 존재하는 것들'과 결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서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시냇물이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다시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

내가 가진 그 수많은, 그러나 한 번 들춰보지도 않은 DVD들, 듣지 않은 CD들, 먼지 쌓인 책들.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 애썼던 것일까? 그냥 영화는 개봉할 때 보고, 혹시라도 그때 못 보면 나중에 DVD를 빌려 볼 수 있었을 텐데, 책도 도서관에 가서 읽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모든 것이 막힘없이 흘러갔다면 내 삶은 좀 더 가벼워질 수 있었을 텐데, 더 많은 것이 샘솟았을지도 모르는데,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인생을 흘러가는 삶, 스트리밍 라이프 Streaming Life라고 부를 수는 없을까?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중에서 

새벽 4시 30분 기상 & 새벽 산책 Day 73

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38591

 

오래 준비해온 대답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김영하의 본격 여행 산문『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소설가 김영하가 10여년 전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을 생생히 담아낸 책이다. 2009년 첫 출간 당시 많은 사랑

b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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