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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계사 Sam 일상/꾸준하게

매일 최선을 다하는 꾸준함 Day 118.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새벽 산책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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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수련> 중에서 

 

2020년 12월의 마지막 날,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새벽 산책을 하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지난여름부터 매일 같이 비가 올 때에도, 태풍이 오던 날에도, 몸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아니면 빼놓지 않았던 새벽 산책. 새벽 산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단순하다. 좋으니까. 좋으니까 계속할 수 있는 거다. 도대체 뭐가 그리 좋은 거냐고? 

 

우선 어제와 확실히 구별되는 오늘을 살 수 있어서 좋다.

새벽 4시 30분 전에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한다. 7시간을 자기 위해서는 적어도 9시 반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생기더라도 되도록 12시 안에는 잠을 자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잠을 자는 날과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 다르다. 잠을 자면서 어제를 확실히 떠나 보내고 잠에서 깨어나면서 오늘을 맞이한다. 밤 늦게까지 야근하며 어제인지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를 날을 살 때는 지겨운 일상의 반복이었는데, 12시 안에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면서 오늘이 어제와 다른 새로운 날이라는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새로운 하루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면서 어제 실패했던 일, 어제 힘들었던 일, 어제 우울했던 일을 떨쳐내는 게 예전보다 쉬워졌다. 어제와 구별되는 오늘인데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은 어제의 고통은 되도록 어제로 머물게 한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는 느낌은 매일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로운 하루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현재(present)가, 지금 이 순간이 왜 선물(present)인지 알게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받지 못했던 선물을 새벽에 일어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있다. 그렇게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에 대한 감사의 시작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감사로 이어지며 불평보다는 감사할 거리를 찾게 한다. 

 

산책하는 시간은 온전히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일상과 구별되는 나만의 특별한 시간이다.

인적이 드문 어둠 속에서 걷다 보면 온 우주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자연과 나만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한 깊은 생각으로 이어지고, 때때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해답을 얻기도 한다. 탁 트인 공간에서 산책하며 생각하는 것은 내 방에서, 내 사무실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새벽의 맑은 공기는 나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정화해주고, 분주한 하루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하는 이유

 

 

일상의 소용돌이에서 휘말리지 않고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가 닥치더라도 정신을 차리게 하는 힘이 새벽 산책이었는데 12월이 되면서 그 힘을 잃었다. 후회, 자책, 포기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되어 마음이 무너지고 건강까지 잃었다. 왜 그랬는지 새벽 산책을 다시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새벽 산책을 다시 시작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새벽 2~3시에 일어난다. 눈이 떠질 때 그냥 일어난다. 일어나서 하는 일은 책을 읽는 일이다.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책들을 다시 깊이 읽고 있다. 한 페이지를 30분 넘게 읽기도 한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에 책 장을 넘길 수가 없다. 메모를 하기도 하고 그냥 메모 없이 생각이 이어지는 재미를 만끽하기도 한다. 1~2 시간 정도 책을 읽다가 4시가 되면 간단히 씻고 산책을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이 산책하면서 깊어진다. 책과 책이 연결되기도 하고, 당장 처리해야 할 문제들에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도 한다. 독서를 통해 생각할 거리를 갖고 생각을 하면서, 어제와 다른 생각, 어제보다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산책 후 돌아오면 산책 중에 얻은 아이디어를 오늘 하루 어떻게 실행할지 계획을 세우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내가 12월 달을 시작하면서 했던 새벽 산책에는 산책의 이유였던 생각이 빠져 있었다. 걱정과 후회의 늪에 빠져 책을 많이 읽지 않았고, 읽은 책도 나의 우울한 마음과 힘든 마음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책들만 읽었다. 그러다 보니 산책하면서 생각을 하지 않고, 생각 없이 떠오르는 과거의 잔상이 마음을 지배하게 만들었다. 생각 없는 걷기는 나를 지키지 못하고 우울이 나를 삼켜 버리게 놔둔 것이다. 

 

새벽 산책은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의 본질은 걷기가 아니라 생각하기에 있다. 비록 12월의 새벽 산책은 나를 지키지 못했지만, 그 이전에 쌓아온 힘 덕분에 빨리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나를 지켜야 할 지에 대한 해답도 찾았다. 새벽 산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니 새벽 산책을 계속하고 싶은 이유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새벽 산책을 하는 것은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힘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다. 오래된 우울의 관성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하기 위해, 예측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해법을 찾아 내기 위해 나를 수련하는 과정이다. 

 

수련의 첫 단계는 일상적인 시공간을 나만의 구별된 것으로 구축하는 노력이다.

일상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와 같아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나를 삼켜 버린다.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그 거센 움직임보다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단단한 바위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귀한 손님이 있다. '하루'라는 신기한 손님이다. 맞이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금방 자리를 떠나는 '순간'과 같은 손님이다. 그러나 내가 정신적으로 깨어 있을 때, 이 손님은 나에게 아름다움과 보람을 선물한다.

배철현, <수련> 중에서 

 

 

 

새벽 기상 & 새벽 산책 Day 118 중랑천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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