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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계사 Sam 일상/꾸준하게

매일 실천하는 독서 Day 119.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ft. 새벽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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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실천하는 독서 - 배철현, <승화> 중에서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2019년 1월 1일 이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새해 첫날은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이 인생이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무슨 일을 할까? 

 

2021년 1월 1일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휴대폰 액정 화면의 2020이 2021로 바뀐 거 외에 오늘이 2021년이 시작되는 첫날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특별한 이벤트는 거의 없다. 매년 열리던 보신각 타종 행사도 67년 만에 중단되었고, 해맞이 명소도 문을 닫았다.

 

이렇게 특별한 이벤트 없이 시작되는 2021년이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하며 기대된다.

 

매년 한 해의 마지막은 누군가와 함께 특별한 이벤트로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혼자 있기 싫어 누군가와 함께 보신각 타종 행사를 보러 가기도 하고, 해돋이를 보러 가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래서 1월 1일은 늘 늦잠을 자거나, 숙취에 시달리거나, 하루 종일 TV를 보거나 빈둥대며 시간을 보냈다. 이벤트를 함께 한 누군가에게는 이러저러한 것을 이루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말만 그럴듯할 뿐 그걸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의지는 없었다. 목표나 의지가 있었더라면 새로운 한 해를 그렇게 늦잠을 자거나 빈둥대며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의미 없이 지속되던 새해맞이 이벤트를 끝낸 건 2019년 1월 1일 메멘토 모리를 확인시켜준 사건이 발생한 이후다.

 

아우렐리우스는 58세의 나이로 로마 제국의 최전선에서 인생을 마친다. 그는 일주일 정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인생은 5막인 줄 알았건만 3막으로 종료되는 허무한 연극일 수도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가 세상에 올 때 내 의도가 아니라 연출자의 의도대로 온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도 그 연출자의 의도대로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할까? 나는 오늘 옳은 것을 말하고 진실을 말하는가? 나는 옳은 것을 가려내고 진실한 말을 생각해낼 수 있는가?

배철현, <승화> 중에서 

 

2019년 1월 1일에 계획한 특별한 이벤트는 친구와 함께 라오스 방비엥(Vientiane, 비엔티안)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친구가 꽃보다 청춘에 나온 블루라군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방비엥을 목적지로 정했다. 2018년 12월 31일 새벽에 도착한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눈을 붙인 후 블루라군에 갔다. 유명하다는 한국 라면과 맥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라오스 방비엥의 블루라군과 한국라면

 

블루라군에 다녀와서 잠시 호텔에서 쉬다가 새해맞이를 위해 호텔을 나섰다. 라오스에 도착한 이후 라면밖에 먹지 않아 허기진 속을 달래기 위해 맛집을 검색하고 찾아갔다. 그런데 날이 날인지라, 가는 맛집마다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었다. 허기짐에 쓰러질 것 같았던 우리는 맛집을 포기하고 그냥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 헤맸다. 꽤 오랜 시간을 헤매다가 어느 외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빈자리를 보고 들어갔다. 담배를 피는 손님이 많아 담배 연기가 자욱했지만 싫은 담배 연기보다 허기짐이 더 컸기에 그냥 들어가서 빨리 음식을 먹고 나와 좋은 곳에 가서 새해맞이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무난해 보이는 팟타이와 버섯 오믈렛을 주문하고 나오자마자 빠른 속도로 먹고 나왔다.

 

 

팟타이와 버섯 오믈렛

 

음식점을 나와서 방비엥 시내를 걷던 중 친구는 어지러워서 못 걷겠다고 주저 앉았고, 나도 속이 너무 안 좋아 잠시 호텔에 가서 쉬기로 했다. 친구를 부축해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는 침대에 쓰러졌고, 나는 화장실로 가 먹은 것을 토했다. 토하고 나니 입술과 혀가 마비돼서 거의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어지러워 바닥에 앉아 침대에 기댔다. 친구는 모기 만한 목소리로 헛것이 보이고 죽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나지만 가만히 있으면 친구에게 큰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내 혀가 거의 마비된 상태라 호텔에 얘기할 수도 없었다.

 

낮에 환전을 하고 버기카를 빌리면서 카톡을 하게 된 한국인 아저씨가 생각나 카톡으로 도와달라는 톡을 보냈다. 카카오톡 통화하기도 눌러봤으나 받지 않으셨다. 라오스 주한 대사관 긴급 연락처를 검색해서 전화했더니 방비엥에 있는 한국인 간호사가 있는데 연락이 안되서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하필 12월 31일 밤이었다. 그러다 한국에서는 이미 새해가 밝아 친구들로부터 새해 인사 톡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의식을 잃어가는 친구를 보며 마음이 급해진 나는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 톡에 도와달라는 톡을 남겼다. 한국에 있는 친구가 바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하는데 혀가 꼬여 말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긴급한 사정을 감지한 친구는 전화를 끊고 기다리라고 했다. 

 

할 수 있는 걸 다하고 의식을 잃어가는 친구옆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전화가 왔다. 라오스 한인 회장님이셨다. 자초지종을 들으시더니 전화를 끊고 기다리라고 하셨다. 몇 분쯤 지났을까 호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호텔 직원들과 한국인 한 분이 계셨다. 호텔 직원들은 대사관의 전화를 받고 왔고, 한국인 한 분은 라오스 한인 회장님이 보내셔서 오셨다고 한다. 휠체어에 친구를 싣고 호텔 정문까지 갔다. 응급차에 친구를 싣는데 버기카를 빌려주셨던 한국인 분들과 일행이 달려오셔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한인 회장님이 보내셔서 오신 분(방비엥 천사라고 하겠다)이 자기가 책임지고 병원에 데려갈 테니 다른 분들은 걱정 말라고 하고 함께 병원에 동행하셨다. 

 

방비엥에서 제일 큰 병원이라는 데 병원 상태는 차마.... 너무 더러웠다. 바로 돈을 내지 않으면 주사 하나도 놔주지 않았다. 방비엥 천사님이 내가 하는 말을 통역해 주시고 돈을 내주셔서 링거 주사를 맞았다. 링거 주사를 맞으면서 혀의 마비도 풀리고, 친구도 조금씩 정신을 찾아갔다. 

 

마비가 풀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 방비엥 천사님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라오스 한인 회장님에게 전화가 와서 지금 당장 호텔로 가보라고 하셔서 온 거라고 하셨다. 문득 나는 라오스 회장님에게 연락한 적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 있는 친구가 인터넷을 뒤져 라오스 한인 회장님 연락처를 찾아 연락한 것이었다.

 

원인이 무엇인지 다양한 추측이 있었으나, 가장 그럴듯한 추측은 버섯 오믈렛의 버섯 성분때문이었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방비엥에는 매직 버섯이라는 마약 성분이 있는 버섯이 있는데 우리가 먹은 버섯 오믈렛의 버섯이 매직 버섯으로 만든 오믈렛일 거라는 추측이다. 나는 버섯 오믈렛의 약 1/3만 먹고 토하고 친구가 2/3을 먹었다. 친구가 환각 증세를 보이고 상태가 훨씬 안 좋았던 게 설명이 된다. 세상에. 길거리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메뉴판에 있는 메뉴를 골라 먹은 건데 거기에 마약 성분이 있다니... 한국에서 나를 도와준 친구는 건강하게 돌아온 나와 친구를 보고 변호사 둘이 라오스에 가서 속아 마약을 먹고 왔다고 놀렸다. 

 

그렇게 친구 뿐만 아니라 주한 라오스 대사관, 라오스 한인회장님, 방비엥 천사님, 버기카 한인 아저씨 등등 전혀 모르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라오스 방비엥의 한 병원에서 2019년 1월 1일을 맞이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무엇보다 말도 안통하는 타국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친한 친구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지금 생각해도 두렵다. 메멘토 모리,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문장을 온몸으로 느꼈던 순간이기도 하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내가 의도한 시간이 아닌 나도 모르는 언젠가 죽음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내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남았다. 

 

" 죽음을 망각한 생활은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걸 의식한 생활은 신의 상태에 가깝다."

톨스토이

 

그리고 나는 새해 이벤트를 끊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은 시작보다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2020년 1월 1일에도, 2021년 1월 1일인 오늘도 나는 메멘토 모리를 생각했다.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생각은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 지금 시작하는 올해를 최선을 다해 살자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이런 다짐을 하면 절대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자거나, TV를 보면서 하루를 보내거나 할 수 없다. 눈이 떠지는 새벽부터 삶에 대해 감사하고, 어떻게 내 삶을 충실히 살아갈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산책하며 생각했다.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며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자. 올해가 내 인생의 마지막 해인 것처럼 살자. 

 

그 어떤 이벤트도 없이 시작하는 2021년. 마지막인 것처럼 사는 일상이 모여 특별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믿고 기대한다. 

 

오현호, <부시 파일럿, 나는 길이 없는 곳으로 간다> 중에서 

TV보는 시간, 습관처럼 인터넷 서핑하는 시간을 없앴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떤 술자리도 가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약속이나 술자리는 사실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그 시간에 얼마든지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당연했던 것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당신이 내일 죽는다 해도 지금 하는 일이 가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데 망설이지 않도록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 한다. 한 시간을 바꾸면 하루가 변하고, 하루가 변하면 삶이 달라진다.

오현호, <부시 파일럿, 나는 길이 없는 곳으로 간다> 중에서 

 


 

새벽 기상 & 새벽 산책 Day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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